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하여, 단편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영><천사의 도시><어느 사회주의자의 연인> 등을 발표했던 박정애의 장편소설. 제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주인공 `님이`를 축으로 하여 3대에 걸쳐 한 집안의 여러 여자들의 일생을, 한국의 거칠고 험난하였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길어 올린 작품. 여성적인 생명력과 해학적 경쾌함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 `읽기`의 즐거움을 한껏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지난 3월말 마감한 제6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90여 편이 응모해, 두 달에 걸친 공정한 예심과 본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4편 가운데 만장일치로 박정애의 [물의 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예심은 소?설가 은희경, 김남일, 문학평론가 권성우, 백지연 씨가, 본심은 소설가 현기영, 문학평론가 황광수, 황현산 씨가 맡았다.
[물의 말]은 여성적 생명력의 화신과 같은 \"님이\"를 중심으로 여성 삼대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식민지와 해방과 전쟁과 독재와 학살과 저항과 해체의 시대를 살아온, 아니 주로는 그 시대의 뒤안을...
지난 3월말 마감한 제6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90여 편이 응모해, 두 달에 걸친 공정한 예심과 본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4편 가운데 만장일치로 박정애의 [물의 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예심은 소설가 은희경, 김남일, 문학평론가 권성우, 백지연 씨가, 본심은 소설가 현기영, 문학평론가 황광수, 황현산 씨가 맡았다.
[물의 말]은 여성적 생명력의 화신과 같은 \"님이\"를 중심으로 여성 삼대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식민지와 해방과 전쟁과 독재와 학살과 저항과 해체의 시대를 살아온, 아니 주로는 그 시대의 뒤안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는 한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결정들의 영향은 온 몸뚱어리로 받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처의 역사이면서 범 여성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총평에서 이념적 지양을 서두르지 않는 여유와 폭넓은 시야에 이끌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웅숭깊은 맛과 해학적 경쾌함이 갈마드는 문체와 토착어의 생동감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시대와 관념의 질곡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기에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현실감을 띠게 되는 전통적 여성성, 그 내면의 풍요로움이 거의 자연에 육박하고 있다. 그것은 한 세대를 격해 새로운 현실과 충돌하며 다채로운 색깔들로 분화된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 \"님이\"의 편지로 마무리하면서 느슨하게, 그러나 분명한 희망을 가지고 여성성의 다양한 파편들을 효과적으로 추슬러냈다.\"
당선 소감에서 밝혔듯이 작가의 문학과 존재의 뿌리는 페미니즘이지만, 90년대 한국소설을 풍미한 그런 페미니즘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저의 페미니즘은 어머니 세대와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저력을 계승하는 데서 옵니다.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헌신이 가족주의의 틀 안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열릴 때 페미니즘의 소중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선생처럼 오래, 열심히 쓰고 싶다\"는 작가의 포부처럼, 침체된 우리 소설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작가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심사평
이 소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늘 타자로서 배제되어 온 여성의 가치를 생경한 공격적 언어가 아닌, 치밀한 예술적 전략으로 옹호하고 있다. 주인공 님이를 중심에 두고 3대에 걸친 한 집안의 여러 여자들이 펼치는 이 드라마는 \"조선 딸들의 애사\"라고 불리움직도 한데, 일제, 전쟁, 산업화, 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세찬 격랑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기구한 운명을 실감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님이를 중심으로 촘촘히 혈연의 그물을 엮어내는 그 구성력은 예사로운 능력이 아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자재로운 언어구사 능력에 있을 것이다. 전통사회에는 토속어를, 도시사회에는 지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어느 경우에도 성공적이어서 농촌(과거)과 도시(현재)의 대비가 선명하다. 전통사회를 복원하는 토속어의 능란한 구사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글 속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이만큼 풍요롭고 구수한 맛을 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 현기영(소설가)
우리 소설에서 여성 두 세대를 갈라놓은 시공간이 옹글게 포착된 예는 매우 드물다. 차이와 갈등이 도드라지면서 오히려 망각의 늪에 묻혀버릴 때가 많았다. 박정애는 두 시간대를 무리하게 박음질하지 않고, 섬세한 언어적 파동과 웅숭깊은 지혜의 눈으로 맥맥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 물줄기가 제도의 경계를 벗어나 관계의 미궁으로 흘러들 무렵, \"님이\"는 사랑하는 딸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녀의 눈에 새로운 적이 잡힌 듯하다.
- 황광수(문학평론가)
여성들의 삶을 한 편에서는 역사의 시간 축에서 파악하고 한 편에서는 동시대의 생활 현장에서 살피는 이 소설의 얼개는 매우 지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더 감동적인 것은 다른 데 있다. 필경 궁핍한 생활에서만 가능할 자연과의 깊고 뼈저린 교감이 그것이다. 지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이 자연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여성주의적 내용은 그 진실성과 구체성을 얻는다.
- 황현산(문학평론가)
줄거리
맘산 이쪽 골짜기에는 달밭골, 다릿말, 꿩주둥이말 이렇게 작은 마을 셋이 늘어서 있다. 다릿말 알부자 김만석의 아우인 달밭골 김만정 영감의 집에는 허구한 날 베틀에 붙어사는 마누라 반야월댁, 찰떡궁합 아들며느리, 손자 영진, 미혼의 작은딸 님이, 자살한 큰딸 연이가 남긴 네 아이가 있다.
반야월댁은 맘산 저쪽 도시에서 잡화점 집 고명딸로 어려움 모르고 살다 정신대 끌려가는 도중에 부산에서 돌아온 한 많은 여자다. 오년을 약시시하여 기력을 되찾은 반야월댁이 변함없이 순정을 바치는 잡화원 점원 한씨 총각과 결혼하는 날, 새신랑 골탕 먹인다고 동네 사람들이 살구나무 가장귀에 한씨를 매단 게 사단이 되어 신랑이 유엔군의 총에 즉사하고 만다.
반야월댁의 홀아버지에게 지참금을 받아 챙긴 다릿말 노랑이 김만석의 술책으로 김만정과 반야월댁이 혼인하면서 그 사이에 연이와 님이 자매, 영진 아비가 태어난다. 내성적인 성격에 청력이 좀 약한 연이는 님이를 연모하는 고아 출신 뜨내기 최가와 결혼하여 꿩주둥이말 끝에 콩알처럼 붙은 폐가에서 살림을 시작한다.
마을 토박이 김씨 일족에게 복날 똥개 취급당한 것이 못내 분한 최가의 폭력과 무시, 잇따른 출산과 가난으로 삶에 절망한 연이는 사내아이인 환이와 종이, 계집아이인 윤아와 미아를 남긴 채 목을 맨다. 님이는 연이의 네 아이를 따스한 모성애로 거두지만, 처가를 찾아왔다 무안을 당한 최가가 홧김에 아이들을 데려가 버린 후 맘산 저쪽 읍내의 약방 집 재취자리에 출가하게 된다.
모친의 강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님이에게 새장가를 든 약방 주인 권개동은 병약한 전처 유씨와 딸 예지를 한 집에 기거하게 된다. 온 집안이 아들을 바라는 분위기 속에서 님이는 딸, 필남을 낳는다. 그 딸이 아홉 살 때 권개동의 아들을 낳은 여자가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유씨 모녀와 님이 모녀는 각각 분가한다.
님이는 형부 최가를 만나 그의 진심과 소통하면서 그와 결합한다. 최가를 통해 연이의 네 아이 중 윤아만 되찾은 님이는 도시로 이사하면서 윤아와 필남을 함께 키운다. 윤아는 공부를 잘하여 치과의사가 되지만, 일정 기간 돈을 벌어서는 해외로 나가 떠돌아다니다 돈이 떨어지면 귀국하여 다시 취직하는 짓을 반복한다.
윤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없는 친밀감이 초래할 공포에 지레 겁을 내어 누구에게나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는다. 할미의 노골적인 미움을 받고 자란, 님이의 딸 필남은 자신의 여성성을 혐오하며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대학에 진학한 필남은 사랑의 실패와 시대의 아픔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다 광주항쟁 진상 규명과 학살자 처단을 외치며 투신한다.

유씨의 딸 예지는 예쁘고 야무진 인기 약사로서 잘생기고 착한 남편과 귀여운 남매를 둔 이 시대의 현모양처이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예지는 아낌없이 희생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예지의 희생은 습관처럼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남편이 아파트 안팎에서 거푸 바람을 피우고, 직업과 가사를 함께 감당하느라 마음만큼 관심을 쏟지 못한 아이들이 멀어지면서 예지를 덮치는 감정은 끝을 모르는 허무이다.
결국 그녀는 지방의 약국으로 혼자 내려간다. 님이는 윤아와 예지를 둘 다 딸이라고 생각하고 거둔다. 님이를 통해 윤아와 예지 또한 자매로서의 정을 나누게 된다. 이 세 여자의 각별한 유대는, 물욕으로 벌어진 권개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