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그의 시세계는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시인과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서정의 쇄신 가능성을 탐구해온 경향과 대비될 만한 서정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위의 작품은 그러한 요소를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시적 서정이 운용되는 원동력을 앞에서 과묵함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평자들이 황학주의 시적 미학적 특성으로 자주 손꼽는 애매성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중략) 서정의 쇄신을 위하여 감각이나 언어의 ‘기술’ 보다 오히려 ‘온몸’의 존재성을 실현하려는 시쓰기가 중요하다면 황학주의 과묵한 서정은 의미...
그의 시세계는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시인과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서정의 쇄신 가능성을 탐구해온 경향과 대비될 만한 서정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위의 작품은 그러한 요소를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시적 서정이 운용되는 원동력을 앞에서 과묵함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는 평자들이 황학주의 시적 미학적 특성으로 자주 손꼽는 애매성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중략) 서정의 쇄신을 위하여 감각이나 언어의 ‘기술’ 보다 오히려 ‘온몸’의 존재성을 실현하려는 시쓰기가 중요하다면 황학주의 과묵한 서정은 의미로운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인식이나 감각에 대한 운용법은 온건한 시적 서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불편한 생의 실체를 ‘감추듯 열어보이기’ 때문이다.
황학주의 이번 시집은 삶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는 스스로 거처를 마련한 고흥이고, 둘째로는 그가 자주 봉사단체를 이끌고 방문하는 아프리카이다. 그런데 지난 시집부터 적지 않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공간(지난번 시집에서는 ‘아버지’가 자주 등장하였다), 또는 유년이라는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 번째 공간에서 가족과 유년의 공간은 다시 하나로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라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첫 자리에 그는 ?고향?이라는 시편을 자리 앉혀 놓았다. 이러한 선택은 시집을 구성하는 전략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배치일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이러한 선택이 시집 전체의 방향을 이끌고 나아간다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가 없다. 그 방향이 무엇일까?
(전략)
이러한 삶의 방향성이 이번 시집에서 가족과 유년의 추억을 다룬 시편들의 비중을 어느 시집에서보다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른다. 삶에 들러붙는, 그야말로 “몸 전체로 밀고 나아가는” 시편들을 생산해온 그의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가족과 고향 시편들의 증가와 더불어 죽음과 연관된 시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죽음’은 지금까지의 황학주 시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소재로 특히 사랑과 연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며 앞으로 그의 시쓰기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절실한 시편들은 역시 길 위의 삶을 노래한 것들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몸과 마음에 ‘상흔’을 부벼넣는 길 위의 삶이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탓일까.
(전략)
오래 전, 호남의 어느 시인이 이런 계절의 간이역을 소재로 아름다운 시를 한편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를 모티프로 그의 친구인 소설가가 같은 제목으로 짧은 소설을 한 편 발표했었다 - ?사평역?이라고. 그때 그 시와 그리고 후일에 발표된 소설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아름다운 시를 소재로 수채화 같은 단편을 한편 써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꼈었다. 거의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 그 작품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삶의 “오래 절룩거려온” 상처로 “먼 데 있는 정거장까지 알아볼”수 있는 시선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별의 뿌리는 별보다 더 먼 곳에서 요동치고 있을 것”이라는 표현에서는 삶을 인도하는 슬픔의 절실한 깊이를 체감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홍매(紅梅)’와 교감하는 ‘별’과 그것들이 부려놓은 슬픔의 힘으로 원기를 찾아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되새’의 움직임이 선명한 영상으로 뇌리에 박힌다. 내 친구 황학주의 이 작품을 언제쯤 소설로 써낼 수 있을까? 그때까지는 우선 기억의 메모장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자주 암송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까 보다. 매일매일 황학주의 ‘상처학교’에 등교하는 기분으로.

목차
고향/13 능가사 벚꽃 잎/15 큰눈 오는 날/17 길/19 갱국/21 노랑꼬리 연/23 내일 오늘 어제/25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27 여좌동 늙은 남자들은 벚꽃로에서/29 가랑잎 다방/31 발포 해변?/32 밤 개펄/34 슬레이트 지붕, 파란/36 하늘호수/38 궁수/40 붉은 꽃/42 고흥/45 자작나무 날개/49 망상역/50 엉거주춤/52 빨간 길 웅덩이/53 은하수역, 저쪽/56 조용한 여름/58 박스 나르기/59 도화, 도화/60 협궤/62 팽나무/64 섬/65 꽃구경/67 개밥바라기/69 수국/70 아프리카 집시의 어느 아침/72 회오리 마을/74 봄이 돌아온 바다의 어느 거북 이야기/76 눈 오는 추풍령면/78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83 킬리만자로역/86 우연에 가까운 사랑을 미루면 어떤가/89 황하 절벽/91 가끔 도둑고양이가 지나가는 스물한 살의 창가/93 목쉰 귀뚜라미/95 웅덩이 성묘/97 겨울비/99 단풍 오는 길로 당신은 가고/101 구절리/102 야간학교/104 미리내의 뷰샹파이/105 가고 가는 것이라면/ 107 흑장미 말을/109 서산/111 방학동/115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1월 어느 저녁/117 베이징 폭설/119 발목 지고 가는 코끼리 발목이/122 아홉 번째 가출/124 샛강 마을/126 그대라는 간격/128 그 바닷가 수양버들/129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왜 그 가슴을/131 봄날 부고/132 모퉁이/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