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박골 가는 길에 좋은 밭자리는 모조리 담배밭 옥수수밭 고추밭이다. 이 모진 가뭄에도 웬일로 담배와 옥수수와 고추만은 푸르고 싱싱하여, 이 세상에 다시 없는 평화롭고 넉넉한 농촌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이러한 자연을 이오덕 시인은 군더더기나 가식없이 진실되게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우리 시대의 참된 스승, 이오덕 선생님의 시집
어린이문학 바로세우기와 글쓰기 교육을 위해 힘쓴 ‘참된 스승’으로서 평생을 ‘교육 운동, 어린이문학 운동, 글쓰기 운동, 우리말 운동’에 바쳐온 이오덕 선생(2003년 8월 작고)의 유고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말 살려쓰기』, 『우리글 바로쓰기』 등 우리 말글 사용에 관한 책이 여럿 있고, 생전에 동시집과 동화책이 몇 권 나오기는 했으나, 선생의 이름으로 시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은 육필 원고를 정리하여 ...
우리 시대의 참된 스승, 이오덕 선생님의 시집
어린이문학 바로세우기와 글쓰기 교육을 위해 힘쓴 ‘참된 스승’으로서 평생을 ‘교육 운동, 어린이문학 운동, 글쓰기 운동, 우리말 운동’에 바쳐온 이오덕 선생(2003년 8월 작고)의 유고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말 살려쓰기』, 『우리글 바로쓰기』 등 우리 말글 사용에 관한 책이 여럿 있고, 생전에 동시집과 동화책이 몇 권 나오기는 했으나, 선생의 이름으로 시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은 육필 원고를 정리하여 묶은 이 시집에는 모두 57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을 정리하여 엮는 데에는 ‘이오덕 선생님 유고 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 씨([모든 책은 헌 책이다] 저자)가 큰 몫을 해주었다.
최종규 씨는,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문학 비평’과 ‘교육운동’ 등에 헌신하시느라 정작 ‘자기 자신의 창작’을 할 겨를이 많지 않았으나, 1994년쯤부터는 꾸준히 시 창작을 해왔으며 다만 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 계실 때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놓았던 ‘시 창작 공책’을 돌아가신 뒤 다른 원고를 갈무리하면서 비로소 한 권씩 찾아낸 것이다.

입말이 살아 숨쉬는 시
평소 “세상에서 시인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 말하며, 억지로 글을 짜내고 뜻을 모호하게 만들어 쉽게 읽어내기 어렵게 글을 써내는 시인들을 질타하던 이답게, 선생의 시는 꾸밈없는 입말의 맛이 살아 있다. 행갈이 한 것을 무시하고 단숨에 읽으면 선생이 바로 앞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산문 같은 시들이 상당수다. 그런데 그러한 선생의 말씀은 호통과 꾸짖음, 어쩌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모진 소리이다.

정말이고 또 정말이지 사람이/개나 돼지만큼이라도 된다면/그보다 더 나아간 역사가 없을 것이다./사람이 개나 돼지만큼 된다면/어디 이런 꼴을 보이겠나?/전쟁도 없을 테고 통일도/벌써 오래 전에 다 됐을 테지./사람이 개돼지 짐승만큼만 된다면! ―「고든박골 가는 길 2」 중에서

선생은 나이가 드시면서 더욱 사람을 못마땅해하셨다고 하는데, 자연과 공존하는 삶, 욕심 없는 소박한 삶,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선생에게는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고 생명 있는 것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탐욕과 속임수, 무지와 차별로 가득한 인간과 문명의 잔혹함에 대한 분노가 선생의 시에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든박골의 소박한 일상의 삶을 담은 담백한 시

달콤쓸콤 버찌 맛/손은 온통 딸기물이 버찌물이 들어/찐덕찐덕/새빨갛고 보랏빛이 되고/입술이 검붉게 되어 버린 것도 모르고/어린애처럼 따 먹는다.//아, 이래서 나도 온갖 벌레와 짐승을 키우는/가시덤불이 되고 벚나무가 되고/바위가 되고/햇빛과 바람과 개골물과/흰구름이 어울려 있는 산/산이 되는구나, 산이! ―「딸기와 버찌」 중에서

이 시집에 유독 자주 나오는 소재가 바로 딸기이다. 산딸기, 뱀딸기, 넝쿨딸기, 멍두딸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선생은 그 딸기를 맛있게 따 잡순다. 입 주위에 붉은 물을 묻혀가며 손으로 딸기를 따먹는 선생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진한 동심 그대로다. 작고하기 전 고든박골에서 선생이 살고자 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이런 선생의 모습은 저절로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든다. 선생에 대해 이런저런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어쩌면 코끝이 시큰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콧 니어링처럼 소박한 삶을 추구하던 선생의 모습과 생각은 「감자를 깎으면서」와 같은 시나, 이 밖에도 앵두, 염소, 감, 살구, 버찌 등을 소재로 한 시들에도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런데 선생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지천에 널린 산딸기를 따먹는 이가 이제 더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런 야생 열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연의 마음, 순진무구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매일 야생 열매를 따먹으며 이런 시를 썼다. 삶을 파괴하고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꾸짖음 뒤에 절절히 흐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안타까움인지도 모른다.
어린이와 자연에 대한 애정, 환경오염과 인간성의 황폐화에 대한 안타까움 등 선생의 한결같은 마음과 글쓰기에 대한 선생의 지론이 고든박골의 소박한 일상의 삶을 담은 시편들에 그려진다.

정우가 날마다 그날 어디서 무슨 일을 했다고, 무슨 일을 하다가 무슨 말을 들었다고, 무엇을 보았다고,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그 이야기는 죄다 소설이고 시고 역사다. 정우는 글을 쓸 줄 모르고, 쓰고 싶어하지 않고 말로 한다. 본래 시고 소설이고 동화란 이렇게 말이었을 것이다. 말을 그대로 적어야 참된 문학이 된다. 그런데 말은 없고(듣고 보고 겪은 사실은 없고) 머릿속 생각만을 찾아내고 뒤적이고 늘구고 바꾸고 흉내내고 짜 맞추고 근사하게 꾸며서 쓴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되게 생겨난 문학일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학이란 것이 죄다 이 지경이 되어 있다. ―「기름쟁이 가게 주인과 그 아들 이야기」의 시작 노트. (정우는 이오덕 선생님의 아드님)

목차
눈 온 날 경치
내가 할 일
앓는 소리 앓는 노래
기름쟁이 가게 주인과 그 아들 이야기
다시 봄을 부르며
잠
하얀 눈 덮어쓰고
감자를 깎는다
교회당 뾰족탑
염소 1
염소 2
넝쿨딸기 1
감자알이 굵어 갈 때
산비둘기 반주
행복
고든박골 가는 길 1
넝쿨딸기와 뻐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