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行狀, 돌아가신 분의 탄생부터 임종까지 평생의 행적을 기록하되,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중심으로 엮은 글. 이 책은 그 중, 조선 후기에 쓰인 어머니 행장의 열네 편을 담고 있다. 과연 선비들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글로 쓰인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안동 장씨 부인,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지어 바친 것으로 유면한 해평 윤씨 부인 등 어머니들의 넉넉한 마음을 간직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출판사 서평
행장行狀에 대하여
한문체 가운데 ‘행장’은 돌아가신 분의 탄생부터 임종까지 평생의 행적을 기록하되,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중심으로 엮은 글이다. 이것은 보통 죽은 이와 가깝게 지낸 제자?친구?아들이 묘지墓誌?전기傳記?만장輓章을 만드는 데 자료로 쓰기 위해 지었다.
조선 시대에는 수천 편의 행장이 쓰였고, 행장의 주인공은 대개 사대부가의 남성이다. 지금까지 전하는 행장 중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행장은 서른 편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여형제?할머니?고모 등에 대한 행장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행장 가운데 대부분은 ...
행장行狀에 대하여
한문체 가운데 ‘행장’은 돌아가신 분의 탄생부터 임종까지 평생의 행적을 기록하되,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중심으로 엮은 글이다. 이것은 보통 죽은 이와 가깝게 지낸 제자?친구?아들이 묘지墓誌?전기傳記?만장輓章을 만드는 데 자료로 쓰기 위해 지었다.
조선 시대에는 수천 편의 행장이 쓰였고, 행장의 주인공은 대개 사대부가의 남성이다. 지금까지 전하는 행장 중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행장은 서른 편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여형제?할머니?고모 등에 대한 행장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행장 가운데 대부분은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한편 어머니 행장 가운데 15?16?19세기에 쓰인 것은 다 합해도 열 편이 안 되지만, 17?18세기에 쓰인 것은 스무 편이 넘는다. 유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머니 행장이 많이 지어진 시기에 선비들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자식의 글을 통해 영원히 사는 어머니들
조선 시대 어머니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신사임당은 이 책에 없다. 율곡 이이의 신사임당 행장을 안 실은 것은 그것이 16세기에 쓰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들을 소개하려는 뜻이 있다.
한글로 쓰인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안동 장씨 부인,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지어 바친 것으로 유명한 해평 윤씨 부인은 각각 저서와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여기 실린 행장을 통해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또 남편 없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아들에게 곱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부족함 없이 공부시킨 유득공의 어머니, 남양 홍씨 부인과 여자가 글을 배우면 박명하다는 이유로 문재文才를 포기했지만 결국 아들딸을 문장가로 키워 낸 달성 서씨 부인의 삶은 가슴을 울린다.
어머니 마음?아들의 마음
안정 나씨 부인은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포음圃陰 김창즙金昌緝?택재澤齋 김창립金昌立 등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을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는 인재로 키워 세상에서 ‘6창’이라고 불렀다. 이들 가운데 김창집이 지방 고을의 수령으로 가게 돼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 했으나, 나씨 부인은 “내가 어찌 전성양專城養에 해당되겠느냐.”라고 하며 가지 않으려 했다.
관리가 중앙에 있으면 과중한 업무와 박봉 탓에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하지만, 지방으로 나가면 늘 곁에 부모님을 모시고 문안드리며 지방의 특산물을 대접해 드릴 수 있다. 그래서 관리들이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일부러 중앙 관직을 사임하는 소를 올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전성양’이나 ‘전성지양專城之養’이라고 한다. 나씨 부인은 지방관으로서 열심히 일해야 할 아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 한 것이다.
한편 영조 때 대사헌을 지낸 윤동승의 처, 고령 박씨 부인은 아들이 평양 수령으로 제수되고도 일이 많은 그곳 사정을 염려하자 주저 없이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재주로 채우지 못할 바에는 나서지 말라.” 했다. 또 아들이 다스리는 관아의 뜰에서 태장(몽둥이로 볼기를 치는 형벌이다.) 소리가 조금 오래 들린다 싶으면 반드시 쪽지에 매로 때릴 숫자를 써서 태장을 그치게 했다. 하지만 그 쪽지를 아들에게 전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몰랐다. 혹시라도 아들이 아닌 자신이 좋은 평판을 들을까 봐 박씨 부인이 조심했기 때문이다.
사대부가에 대한 오해
이 책에 실린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명문가 사람이다. 조선이 신분을 차별한 사회였음을 생각한다면, 양반가 사람이라야 행장을 지을 만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다. 반가의 규수로 태어난 이 책의 주인공들이 늘 대접받으며 편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남편이나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해도 직계 가족뿐 아니라 내외 친인척, 노비 들을 돌보며 살림을 꾸리자니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남편은 나랏일이나 글공부에 매진하느라 집안일은 돌아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에서 한 사람만 출세해도 온 집안이 그 덕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낯설고 어색하다.
또한 옛 어머니들은 결혼 뒤에 친정을 멀리하지 않았다. 친정 부모 중 한 분이 혼자되시면 직접 모시기도 했으며, 나이 어린 친정 동생들을 데려다 장성할 때까지 돌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친정 식구를 돌보는 것은 천륜을 저버리지 않아 바람직한 모습으로 칭송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고작 200～300년 전의 역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출가한 여성은 친정과 담을 쌓고 지내야 하는 것이 유교의 규범이고, 그것을 조선 사회가 철저하게 따랐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친정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신사임당을 비롯해 이 책에 실린 어머니들의 생활을 보면, 사회가 요구한 규범보다 인간의 순수한 정情을 더 소중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진실을 단정하기 전에 다양한 방면의 역사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목차
옮긴이의 글 … 4
안동 장씨 부인
네가 한 가지 선善이라도 행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이현일 … 13
덕수 이씨 부인
조금이라도 한가하고 편안하게 지내면 마음이 병든 것과 같다｜조지겸 … 27
해평 윤씨 부인
명주를 끊어 책을 사다｜김만중 … 57
안정 나씨 부인
귀신도 울고 바람과 서리까지 움직이다｜김창흡 … 77
풍양 조씨 부인
선비가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한 일을 범할 수 있느냐｜김주신 … 93
경주 이씨 부인
이름이 나기를 바라고 스스로 만족한다면 진정한 사대부가 아니다｜최창대 … 117
청송 심씨 부인
마음속에 본래 ‘노怒’라는 글자가 없도다｜이덕수?이산배 … 141
한산 이씨 부인
어머니가 쓰신 우리 외할머니 이야기｜청송 심씨 부인 … 175
전의 이씨 부인
고모님이 들려주신 우리 어머니 이야기｜심육 … 183
전주 이씨 부인
재물을 잘 늘린다는 것으로 이름이 나서는 안 된다｜안정복 … 199
배천 조씨 부인
이욕利慾으로 소문난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황덕길 … 213
남양 홍씨 부인
가득 차도 자랑하지 않고 없어져도 슬퍼하지 않는다｜유득공 … 233
고령 박씨 부인
많은 지식보다 바른 행실을 먼저 배우라｜윤광호 … 247
달성 서씨 부인
책 읽는 소리와 베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 집안은 마땅히 흥할 것이다｜홍석주 …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