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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열매
- 마모 저
- 해울
- 2009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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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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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저자 소개
지은이 : 마모
레즈비언들의 시린 사랑이야기를 주로 묘사하는 레즈비언 소설계의 인기 작가.
그동안 <메마르고 하얀 목조르기개>, <낙원의 열매> 등의 장편소설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며, 레즈비언의 독특한 감수성과 사랑을 보편타당하게 풀어내왔다.
책 속에서
정말 기도 안 찬 일이다. 헬기가 추락한 날부터 보름이 지나기까지, 그녀는 땅에 떨어진 나무열매는 없나 두리번거리며 걷거나 밤새도록 훌쩍거리며 우는 일 외에는 힘이란 걸 거의 쓰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애초의 시체 매장이나 텐트 건축(?)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녀가 하지 못하는 혹은 하지 않으려는 힘쓰는 일들을 도맡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는 늘 공평히 반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분명 채집 도중 먹을 만한 것은 자기가 미리 먹고 남은 것만 텐트로 가져왔을 확률이 컸다.
이러한 사실과 추론을 차례로 떠올린 나는 그만 분노로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인데, 이미 먹어버린 음식 어쩌겠나 체념하며 간신히 참고 돌아서는 내 등 뒤에 던진 그녀의 한마디는 나의 이성을 저 멀리 달아나게 만들었다.
“어차피 당신 것도 아닌데.”
그녀에게 ‘우리’라든가 ‘함께 살기’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의 멱살을 쥐고, 그녀의 몸을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비록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위었을 지라도 힘이라면 그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거운 촬영기구나 사진 도구들을 들고 다닌 경력이 아니더라도, 나는 원래 여자치고는 비교적 힘이 센 편에 속했다.
그녀는 팔랑개비라도 되는 듯 내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떼었지만 내 안의 분노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멋대로의 행동은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제지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여긴 둘 뿐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기본적인 생존 능력은 내 쪽이 훨씬 우월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손윗사람처럼 엄하게 그녀를 대했다. 언제나 회피하려는 듯 유약한 태도만을 보이는 그녀였기에 그런 방법이 아니고선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그녀의 미약한 힘이나마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거의 죽음을 당할 뻔한 이후로 그녀는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따랐다. 어차피 힘든 일은 내가 하는 편이었지만, 이전 같으면 별별 핑계를 대서 거부할 일들 ― 불 피울 나뭇가지를 찾거나, 불침번을 서는 일들을 얌전히 하곤 했다.
그런 그녀의 변한 태도를 보고 있으려니 새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사회에서도 항상 그런 역할만을 해왔겠지. 아름다움을 빙자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은 모두 남에게 떠맡긴 채, 그게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스타일. 아마 청소 당번조차 교묘하게 피하는 그런 애였을 것이다.
구조대는 오지 않고 원시인 같은 생활로 돌입한지 삼 개월이 넘어서자 아무리 생존력이 강한 나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구조대가 오지 않는 것인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부지런히 찾아봐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지, 설마 하염없이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 절망에 비례하여 어느 샌가 내 안의 폭력적인 짜증도 점차 늘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사실과 추론을 차례로 떠올린 나는 그만 분노로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인데, 이미 먹어버린 음식 어쩌겠나 체념하며 간신히 참고 돌아서는 내 등 뒤에 던진 그녀의 한마디는 나의 이성을 저 멀리 달아나게 만들었다.
“어차피 당신 것도 아닌데.”
그녀에게 ‘우리’라든가 ‘함께 살기’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의 멱살을 쥐고, 그녀의 몸을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비록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위었을 지라도 힘이라면 그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거운 촬영기구나 사진 도구들을 들고 다닌 경력이 아니더라도, 나는 원래 여자치고는 비교적 힘이 센 편에 속했다.
그녀는 팔랑개비라도 되는 듯 내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떼었지만 내 안의 분노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멋대로의 행동은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제지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여긴 둘 뿐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기본적인 생존 능력은 내 쪽이 훨씬 우월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손윗사람처럼 엄하게 그녀를 대했다. 언제나 회피하려는 듯 유약한 태도만을 보이는 그녀였기에 그런 방법이 아니고선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그녀의 미약한 힘이나마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거의 죽음을 당할 뻔한 이후로 그녀는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따랐다. 어차피 힘든 일은 내가 하는 편이었지만, 이전 같으면 별별 핑계를 대서 거부할 일들 ― 불 피울 나뭇가지를 찾거나, 불침번을 서는 일들을 얌전히 하곤 했다.
그런 그녀의 변한 태도를 보고 있으려니 새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사회에서도 항상 그런 역할만을 해왔겠지. 아름다움을 빙자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은 모두 남에게 떠맡긴 채, 그게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스타일. 아마 청소 당번조차 교묘하게 피하는 그런 애였을 것이다.
구조대는 오지 않고 원시인 같은 생활로 돌입한지 삼 개월이 넘어서자 아무리 생존력이 강한 나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구조대가 오지 않는 것인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부지런히 찾아봐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지, 설마 하염없이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 절망에 비례하여 어느 샌가 내 안의 폭력적인 짜증도 점차 늘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목차
낙원의 열매
낙원의 조각들
작가의 말
낙원의 조각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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