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행의 사소한 즐거움을 위한 주관적인 가이드 북



여행은 재미!

일본의 탄력 있는 풍경을 탐하다.

도쿄, 시즈오카, 나고야 그리고 교토까지.



여행은 삶!

한국의 짭짤하면서도 깊숙한 풍경에 스며들기.

남사예담촌, 하동, 증도, 담양과 예산, 청산도



여행은 시간!

놀랍게 느리고, 무섭게 빠른 베트남의 풍경 훑어보기.

호치민에서 호이 안으로, 다시 호치민으로.



똑같은 땅인데도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도 다른 곳.

어떤 이에게는 환상으로, 어떤 이에게는 지루한 이웃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값싼 환락과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땅, 그곳이 바로 아시아입니다.

결코 같은 수 없는 경험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에, 그곳으로의 여행은 많은 편견과 고민의 절충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편견마저 여행의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채로운 세상은 그만큼 다양한 감동을 남겨줄 것입니다.



여행의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여행을 가는 것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하나씩 물건을 끄집어내고 가져가야 할 것과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쌓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의 유적지와 놀라운 건축물 등 유명한 것과 곳에 더욱 시큰둥한 사람도 있습니다. 눈을 아프게 할 정도로,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로 화려하고, 예뻐 보이는 쇼핑몰과 상품을 저주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괜히 남들 안다니는 골목과 번잡한 지하철역에서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낑낑대며 관광안내게시판을 읽는 것보다 그 앞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를 택해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일기를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사적인 가이드 북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보기도 하는구나, 이런 것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자극이 된다면, 자신만의 여행 방법을 찾는 하나의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각기 엇박자와 같은 속도와 박자 그리고 풍경을 일궈낸 곳, 그곳이 바로 아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그 속도의 풍경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자신이 있는 곳과 가야할 속도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야겠지요. 속도에 휘말려 피곤에 절여 돌아올 수도 있고, 지금 여기가 어딘지 분간을 못한 채 실망하고, 감탄하고 다닐지도 모릅니다.
가깝다는 것, 그리고 잘 알 수도 있다는 것은 결코 완벽한 조건이나 꼭 이로운 점이라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차근차근 그 다른 속도의 풍경을 헤쳐가면서, 나름의 주관적이고 사소한 감상과 지식으로 스케치해볼 생각입니다.
편견을 배제하지 않는 이 주관적인 안내서가 오히려 무작정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아시아라는 땅을 장님 코끼리 만지는 우연한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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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시골 도시의 직행버스 터미널에서 시간과 차편이 혼동되어 안내소에 있는 남자 직원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각표를 가리키며 몇 가지 질문을 하자 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 직원이 대화를 하던 좁은 창문으로 몸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허리까지 나온 후 몸을 돌려 시각표를 간신히 쳐다보면서 서툰 내 물음에 답하려고 했습니다. 시종일관 그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른다는 건 아마 이럴 때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_ 일본을 왜 가니?



무인양품은 마치 일본의 입국심사대와 같은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본을 가서 그곳을 가는 것인지, 무인양품을 가기 위해 일본을 가는 것인지가 혼동될 때가 가끔 있을 정도입니다.
그곳에서 일본이라는 곳과 첫 인사를 나누고, 왜 오는가에 대한 간단한 문답을 해야지만 짧은 거리가 만든 아득한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이 현실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꼭 단정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이 딱 맞아 떨어진 건물과 거리, 그리고 소실점이 명확한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감탄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무채색 계통의 일괄된 흐름은 넓은 매장에 통일감을 주고, 그 안을 걷다 보면 묘한 만족감과 귀속감을 주기 마련입니다.
시각적인 만족감은 소비를 촉진하는 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요?
무지에서의 경험은 이곳의 사무용품을 쓰면, 자신의 일들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질 듯하고, 이곳의 주방용품을 쓰면 내 생활의 군더더기가 사라질 듯한 환상을 전해줍니다. 디자인이라는 것, 그리고 상품의 진열과 포장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환상과 기대를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_ 도쿄, 무지와 긴자


공원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공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특색 있는 놀이터들입니다. 일본에서 만난 놀이터 중 가장 독특한 곳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록 아이들은 없었지만, 지팡이를 짚고 산책 나온 노인들에게 놀이터의 그늘은 가장 친근한 벗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넓은 공원의 광장은 마침 인근의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이 차지합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앳된 학생들이 삼삼오오 달리기를 시작하더니, 시끄럽게 지나갑니다. 앞의 몇 명을 제외하고 뛰는 것보다 수다에 더욱 열심인 아이들의 모습이 공원을 한결 편안하게 해줍니다.
_ 시즈오카


하늘거리며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 잎은 마치 하얀 빛깔의 춤사위를 보는 듯하고, 굵직한 꽃나무와 길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아득한 한 쌍의 군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라는 벚꽃의 속도는 차와 사람이라는 하나하나의 파편들과 함께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산의 푸름과 벚꽃의 눈부심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굳이 끝을 가보지 않아도, 내 발로 꽃잎을 밟아보지 않아도 또한 좋지 않을까?
_ 하동


세상이 편해졌다고들 하는데, 고속도로에서 조금만 옆으로 빠져나오면 교통과 거래가 불편한 시골이 됩니다. 그 불편함을 나름의 지혜로 극복했던 장날은 그래서 거대한 자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늙고 주름진 손에 의해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도 원색의 파라솔은 이곳저곳에 꽃을 피웠고, 한껏 차려입고, 머리에 수건으로 마무리한 할머니까지 도로와 길의 경계를 없애며 복잡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느릿한 활기가 그곳에 가득합니다.
시장 여기저기 기웃거려 봅니다. 다 둘러본데도 모두가 시선의 거리 안에서 움직이니 그리 힘들 것도 없습니다. 무질서한 좌판이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가짓수는 많지가 않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외국인이라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 보이는 할머니들이 그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종변천사가 작은 유리벽에 모두 새겨진 상점 역시 시선을 잡아끕니다. 그 풍경이 만족스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합니다.
_ 증도

아시아의 영화는 바닷길이 막히면서 멈추었고, 아시아의 몰락은 바닷길이 다시 열리면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를 넘어온 포르투갈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은 인도에서부터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하였고,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름답기에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았고, 그 아픈 기억이 도시를 살찌우는 양식이 된 도시를 찾아 우리가 사는 아시아를 그려봅니다.
_ 베트남 호이 안 가는 길

1부 일본의 풍경을 찾아 도카이도東海道를 가다

1장. 도쿄
일본에 왜 가니?
록본기힐스와 지브리스튜디오
무지와 긴자
공원에서 불편해하기
하라주쿠와 거리의 음악가

2장. 시즈오카와 나고야
신칸센 그리고 녹차, 시즈오카
이동의 도시, 나고야
고대의 땅, 아츠타
3장. 교토
격자의 파노라마, 교토
기온과 신궁 그리고 언덕
무武와 선禪의 시대

2부 짭짤한 한국의 풍경을 찾아가는 길

가장 빠른 나라에서, 가장 느린 도시 꿈꾸기

남사예담촌과 전통의 미래

1장, 하동의 푸른 봄, 그리고 눈부신 여름
초봄, 꽃길에서 느림의 지혜를
5월, 봄의 보리밭과 불편한 아름다움
녹차가 자라는 곳
사는 곳은 정말 아름답다
하동을 벗어나다

2장. 가는 길이 좋은 증도
보물섬 가는 길
소금밭 보다 알찬 마을
한가한 짱뚱어 다리
천일염과 태평염전

3장. 사과와 엿, 담양과 예산
경계 넘기, 시간 넘기
사과의 신선함이 있는 곳

4장. 느린 가락의 섬, 청산도
경계 넘기, 시간 넘기
사과의 신선함이 있는 곳

3부 베트남, 느린 시간과 빠른 속도 사이의 풍경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