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제사 읽기에서 발견하는 역사적 교훈과 경제사 연구의 흥미로움

새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경제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왜 경제사는 역사학과가 아닌 경제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는가?’
경제사를 전공하는 학자들도 선뜻 마땅한 답변을 생각해내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 책의 저자 오카자키 데쓰지는 역사적 교훈, 현재의 상대화, 실험실로서의 역사, 역사의 경로의존성을 ‘우리가 경제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네 가지 이유’로 제시하며 책을 시작한다.
저자는 ‘제도’와 ‘조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세계경제사를 설명한다.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다양한 거래제도와 생산조직이 탄생하고 존재한다. 왜냐하면 각 지역마다 그 경제가 처한 외부환경과 지금까지 축척되어온 내부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상 존재했던 다양한 ‘제도’와 ‘조직’이 경제를 작동시키는 데 어떠한 기능을 해왔는지를 규명한다. 또한 계량경제사, 신제도학파, 역사비교제도분석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계경제사를 조망한다.

기획 의도 및 출간 의의

미국발 경제위기로 거대 투자은행들의 줄도산이 일어나고, 경제위기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대공황 등의 수많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했을 법도 한데, 왜 여전히 경제위기는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문제에 대한 분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분석은 맞는데 처방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해법을 찾기 위해 과거의 분석과 처방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혜안을 얻기 위해 경제사를 반추하지만, 막상 대학의 강의실 등에서는 경제사를 ‘암기 과목’ 정도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동안 경제사 관련 서적이 독자들에게 경제사의 거대한 흐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이나 관점을 길러주기보다는 편년체적으로 과거사를 나열하는 데 집착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경제사 책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저술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엮는 대신, 세계경제사의 큰 틀을 ‘제도’와 ‘조직’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독자는 이 책 한 권으로 세계경제사 연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판적 독해를 통해 경제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경제의 역사적 발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정리하면서도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러 제도와 조직을 살피면서 새로운 방식의 경제사 쓰기를 시도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사 연구의 기본적인 틀은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발전 단계론을 계승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자본주의는 동일한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종교와 경제발전의 관계’를 규명했던 막스 베버와 ‘경제적 후진성 가설’을 제시한 알렉산더 거센크론은 이러한 마르크스의 주장에 정면으로 비판을 제기했다. 한편, 더글러스 노스는 경제성장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스는 기술혁신, 자본축적, 교육, 규모의 경제성 등은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즉, 국가에 의한 적절한 소유권 보호가 경제성장을 위한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는 국가가 재산권 보장과 같은 법의 집행을 통해 안정적인 거래제도를 뒷받침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근대 이전에는 국가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이 책의 제4장에서 논하고 있는 중세 지중해의 무역이나 근세 일본의 상업을 들 수 있다. 애브너 그라이프의 연구에 의하면, 중세 지중해 무역에서 국가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안정적인 거래제도를 뒷받침했던 것은 상인들의 결탁이었다. 이 책의 저자 오카자키 데쓰지는 일본의 가부나카마라는 조직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인 조직은 서로가 신용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기구속적인 힘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게임의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에 해당한다. 결국, 국가의 법집행이라는 공권력의 존재 아래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더글러스 노스에 대해, 그라이프와 오카자키는 국가권력이 아예 없거나 약했던 시대에도 제도가 중요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그 밖에도 5~6장에서는 생산조직, 즉, 공장과 기업, 노예제, 지주제, 선대제 및 금융거래의 역사와 제도를 통해 역사 속에 나타난 경제현상의 의미를 새롭게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조직이 왜, 어떻게 탄생했는지, 노예제는 과연 효율적인 제도였는지 등에 대해 짚어나간다. 그리고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7장에서는 자금의 흐름을 적절히 중개하기 위해서 자금을 공급하는 측과 수요하는 측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 즉 역선택의 문제와 모럴 해저드의 문제를 언급한다.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은행과 주식시장에서 금융거래를 거버넌스(통치)해온 장치들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