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월요일이 저물기 무섭게 주말이 오고, 새해 계획표를 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이다. 현기증 나도록 빠른 시간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서 있는 길은 꿈꾸던 곳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연애한 게 아까워 결혼을 하듯,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사는 방식을 버리기는 어렵다.
상상해보자. 이런 일이 가능할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일상을 벗어나 나 홀로 쉴 수 있다면.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밀림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내 인생의 계획표를 다시 짤 수 있다면…. 한여름 밤의 꿈...
월요일이 저물기 무섭게 주말이 오고, 새해 계획표를 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이다. 현기증 나도록 빠른 시간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서 있는 길은 꿈꾸던 곳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연애한 게 아까워 결혼을 하듯,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더라도 사는 방식을 버리기는 어렵다.
상상해보자. 이런 일이 가능할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일상을 벗어나 나 홀로 쉴 수 있다면.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밀림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내 인생의 계획표를 다시 짤 수 있다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무망한 얘기다. 하지만 그 꿈같은 안식월을 찾아 필리핀 오지로 훌쩍 떠난 사람이 있다. 그것도 14년차 직업인이자 두 아이와 남편을 둔 가정주부가!
누구에게나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김수영은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실력파 시인이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대필업자’였다.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 나라 최고 권력자와 인기 연예인의 에세이부터 시작해 공부 잘해 신의 경지에 오르는 법, 쇼핑북, 요리책, 육아책, 개나 고양이를 잘 키우는 매뉴얼북, 재테크 가이드까지 서점 서가 한쪽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만큼 책을 써냈다. 일에 치여 노트북을 안경처럼 끼고 살았고, 온갖 치사하고 뒤틀린 관계들을 참아넘겨야 했다. 돌봐야 할 가족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십수 년 동안 생존을 위해 질주하던 그의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에잇, 밟아버려!’
삶에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필리핀 행을 제의받은 순간 그는 “아침마다 등교 준비를 해야 하는 두 아이들을, 뱀눈을 뜨고 째려보는 남편을” 팽개쳤다. 수천만 원짜리 일감도 무시했다. 스스로 고백하건대 “아마도 제정신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였다. 혼자 달랑 짐을 싸서 올랐던 비행기는 그를 뚜게가라오 상공까지 무사히 실어다주었다. 소읍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 잡초 속에서 활주로가 나타났고, 랜딩기어가 내려갔다. 마침내 탈출한 것이다.
생의 절반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 책 《안식월》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일상의 모든 타성에서 벗어나 내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싶었던 한 직업인의 ‘탈출 기록’이다. ‘내가 많이 지쳤구나.’ 깨달았을 때, 김수영이 스스로에게 선물한 게 바로 한 달 간의 ‘안식월’이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의 갑갑하고 절박했던 상황, 다소 불편하되 정직하고 강건했던 열대 밀림 속의 생존 방식, 그 대책 없는 휴식이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들을 나직하면서도 경쾌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가 떠난 곳은 필리핀의 뚜게가라오와 라굼. 특히 라굼은 난공불락인 정글의 입구로, 지구촌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오지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한 달여를 보냈다. 누구나 소망하지만 누구도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온전한 ‘자리비움’이었다.
뚜게가라오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 그는 고모를 떠올렸다. 한때 탤런트였던 고모는 쉰 살이 넘어 훌쩍 외국으로 떠난 뒤 바닷가 외딴 곳에서 10년째 작은 모텔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주방장도 두지 않고 고모는 열기와 싸워가며 직접 스테이크를 굽고 감자를 튀겼다. 그도 스테이크를 뒤집는 것처럼 고집스럽게 인내할 수 있는 일을 간절히 원했다. 마침 그때 필리핀 오지에서 20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에서 새로운 내일을 맞고 싶은 기대와 설렘으로 그는 당장 짐을 꾸렸다.
정글 깊숙한 곳의 낯선 여행객
막상 도착한 그곳은 자신의 기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먼저 그곳의 숨막히는 가난과 맞닥뜨렸고, 수시로 내전이 벌어지는 처참한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비를 맞으며 말을 타고 강을 건너다 죽음과 직면하는가 하면, 풍토병에 걸린 피부에서는 수시로 진물이 나왔다. 스콜이 쓸고 지나간 땅은 온통 진창이었기에, 두 발로 걷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손님을 아낌 없이 대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헤픈 웃음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그를 불러다 비록 이가 빠졌지만 가장 예쁜 잔에 커피를 내주었고, 가장 맛있는 망고를 골라 건넸다. 그곳 사람들의 순한 얼굴과 태평한 일상 앞에서 그는 마침내 무장해제당했다. 나무로 지은 집 안에서 종일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 커피와 고구마, 찐 바나나를 먹으며 멍하니 뭉개구름을 바라봤다. 전기가 통하지 않으니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었고, 시계를 봐야 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은 지루하리만치 천천히 흘러갔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되자, 그는 비로소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연히 창밖을 볼 때마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곳에선 눈물이 흔했다. 사람들은 기도를 하며 몇 시간씩 울었다. 처음엔 ‘저렇게 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고 생각했던 그의 눈에서도 마침내 펑펑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치유의 증거다. 그는 비로소 해묵은 상처들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간의 휴식으로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그 ‘안식월’은 삶의 묘수나 종교적 깨달음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내 안의 한계를 들여다보고, 현실을 수긍하고, 타인을 끌어안는 시간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떠나야 할 날이 왔다.
마음 속의 열대
한국에 돌아간들 변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한 달 넘는 ‘부재’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판이었다. 꼬인 인간관계와 경제적 손실, 밀린 일까지…. 모든 문제는 그 혼자서 오롯이 짊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위눌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안식월은 메마라 있던 그의 표정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여유와 배짱을 선물했다. 그것은 아마도 열대가 준, 온전한 휴식이 준 에너지일 것이다.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마다 그는 문득문득 마음속의 열대를 떠올렸다. 찌는 듯한 한낮에 스콜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듯, 열대의 풍성함이 지금 이곳의 삶에도 존재하리라 믿게 됐다.
이 책《안식월》은 ‘꿈’에서 너무 많이 이탈한 현실을 추스르고자 떠난 한 일상인의 길 찾기를 보여주는 책이다. 생의 절반 지점에서 얻게 된 소박한 깨달음, 모순투성이 삶에 대한 긍정과 화해의 과정이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병혁이 포착해낸 열대의 거침없는 풍경과 어울려 생생하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인 신현림의 말대로, 생존의 속도를 늦추고 인생을 바꿔가는 그만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에너지가 되고,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울타리 너머의 세상
내일부터 10년 간 무엇을 할까
칠흑 같은 밤의 한가운데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 있는가?
야생의 울타리
세 딸의 엄마
가슴 좀 아파보라며 보내는 찌릿찌릿한 전파들
그래도 나는 신발이 두 켤레였다
연한 영혼
2부 평안한 풍경 속으로
에메랄드 빛 강물 너머
길의 시작, 혹은 끝
재수 없음과 재수 있음
하루치의 잠
코코넛떡 생각
붉은 빛이 깨우다
아이들 마음대로
비밀을 나누는 사람
빈 집에서 주인처럼
심심하다, 너무 심심하다
빗방울을 맞는 풍경
나라 나무로 지은 집에서의 하루
나를 온전히 맡긴다는 것
야생 닭 요리가 올라온 점심 식탁
그냥 하루 종일
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말을 타고 강을 건너며
그을음투성이 주전자에 담겨 있던 커피는
만남
3부 정글 깊숙한 곳의 낯선 여행객
서로 기대기
중절모를 쓴 언니
비오는 날
칼날 같은 눈빛
장례식
맨발로 걷다
뿌리들
노란 달 아래서
큰 소가 나를 지켜주었다
4부 흐르는 강물 너머의 시간들
마침내 혼자 떠나다
바라보는 창
들개 무리와 만나다
말잡이들
강 가운데서 만난 것
사로잡힌 물고기들
잎담배를 피우는 할머니
우는 아이
5부 내 안의 작은 평화
박쥐 나무 아래서 보낸 5분
뒤척이는 시간
눈물이 많은 눈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살려면 용서하라
작은 평화의 순간
굿모닝, 맘
마지막 날 아침
하늘로 날아오르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