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시대에 응답한 한 철학자의 이야기
한국 제1세대 서양철학자 서산 정석해 평전

이 책은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연세대학교 초창기의 인문학적 기틀을 세운 학자로서 정석해라는 인물의 사상과 활동을 밀착하여 기록한 책이다. 저자 박상규는 선생 생전의 심층인터뷰, 주변 인물들의 증언, 수많은 기록들을 모아 오래전 이 평전을 썼고, 선생의 사후 20주기를 맞아 미비한 기록과 편지글 등을 보완하여 이 책을 다시 출간하였다. 이 책은 철학자이자 혁명가였던 한 인물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풍경, 인물들을 생생하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출판사 서평
격랑의 시대에 응답한 한 철학자의 이야기
한국 제1세대 서양철학자 서산 정석해 평전
철학자 정석해(鄭錫海)라는 인물은 세간에 그리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계의 후학들뿐 아니라 이 나라 독립운동사에도,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민주화운동사에도 뚜렷이 새겨져 있다. 정석해는 1919년 기미독립운동에서 학생 만세시위를 주동한 인물이었고, 4.19혁명 당시에는 이승만정권 붕괴의 결정타가 된 ‘4.25교수시위’의 주도자였다. 일찍이 유럽으로 건너가 철학을 비롯한 선진 학문을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직...
격랑의 시대에 응답한 한 철학자의 이야기
한국 제1세대 서양철학자 서산 정석해 평전
철학자 정석해(鄭錫海)라는 인물은 세간에 그리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계의 후학들뿐 아니라 이 나라 독립운동사에도,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민주화운동사에도 뚜렷이 새겨져 있다. 정석해는 1919년 기미독립운동에서 학생 만세시위를 주동한 인물이었고, 4.19혁명 당시에는 이승만정권 붕괴의 결정타가 된 ‘4.25교수시위’의 주도자였다. 일찍이 유럽으로 건너가 철학을 비롯한 선진 학문을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직접 습득하여 이 땅에 전수한 1세대 서양철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연세대학교 초창기의 인문학적 기틀을 세운 학자로서 정석해라는 인물의 사상과 활동을 밀착하여 기록한 책이다. 정석해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 박상규(전 홍익대 미학 교수)는 선생 생전의 심층인터뷰, 주변 인물들의 증언, 수많은 기록들을 모아 오래전 이 평전을 썼고, 선생의 사후 20주기를 맞아 미비한 기록과 편지글 등을 보완하여 이 책을 다시 출간하였다.
이 책은 연대순으로 8개 장(章)에 걸쳐 정석해라는 인물의 초상을 복원해내고, 마지막 9장에서는 정석해의 사상과 삶 안팎을 통해 그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는다. 이 책은 철학자이자 혁명가였던 한 인물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풍경, 인물들을 생생하게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를 만든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의 뒷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빚지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한 편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3.1운동에서 파리 유학까지 - 한국 1세대 청년지식인

서산(西山) 정석해는 1899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교육자이자 한국기독교 초창기 신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소년기를 거쳐 연희전문에 입학하였고, 곧이어 21세의 열혈청년으로서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학생 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 평전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3.1운동의 발발과 전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탑골공원에서의 만세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전국으로 운동이 퍼져나갔는가 하는 일단의 생생한 사실(史實)을 접할 수 있다. 선생이 고향 철산에 전한 독립선언문이 현재 유일한 사본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3.1운동으로 인해 만주 망명길에 오른 선생은 그곳에서도 국내 총기반입 등 독립운동에 가담하다가 1920년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선생의 프랑스-독일 유학 시절은 당시 유럽으로 간 이 땅의 지식인들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김법린, 이극로, 이용제 등의 이름이 등장하며, 유럽에 방문한 이승만, 인촌 김성수 등에 대한 소묘, 당시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와의 일화도 소개된다. 선생은 파리대학에서 들라크루아(심리학), 랄랑드(철학), 브룅슈비크(수리철학) 등의 당대 거장들 문하에서 수학하고, 오랜 노동과 학업 끝에 1939년 일본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고국으로 돌아온다.

해방 후 4.19까지 - 행동하는 철학자

해방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희망과 혼란이 뒤섞인 일대 사건이었다. 선생은 해방 직후 연희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대학 초창기의 기틀을 세우는 데 부심하였으나 곧이어 6.25전쟁의 발발로 또 한 번의 고난을 맞는다.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숨어 지내면서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고, 부산 피난 때에는 정부 당국과 출세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육의 본령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의 반민주성과 부정에 항거해 일어난 4.19는 또 한 번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선생의 신념을 촉발한 사건이었다. 4.19 직후 이승만 정부는 책임자 처벌과 같은 유화적 제스처로 어정쩡하게 정권을 유지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즈음에 선생이 고려대 이상은, 이종우 교수와 함께 계획하고 선두에 섰던 4.25 교수데모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승만 하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민주화 후퇴시기와 1964년 대일 굴욕외교에 대한 반대투쟁까지 선생은 말 그대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서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불의한 시대와 정치에 눈감지 못한 한 지식인의 의무감은 오늘의 학자, 지식인에게 던지는 의미가 크다.

연세대학교 인문학의 기틀을 세운 학자

서산 정석해는 연세대학교 초창기 역사에서도 큰 페이지를 차지하는 학자이다. 1945년 부임 후 교무처장, 학생처장, 문과대학장을 지내면서 국어학의 한결 김윤경, 사학자 조의설 등과 함께 문과대학의 학문적 기풍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권력과 정치의 유혹이 지식인들을 타락시킬 때, 학교재단과 외부 입김에 맞서 학문을 위주로 한 기풍을 세우고, 격랑의 시대에서도 대학의 본분과 사명을 지켜낸 것은 이들 고집불통의 선생들이었다.

이 평전에서는 전쟁과 혁명과 쿠데타 등 쉴새없이 이어진 시대의 파도에서도 후학의 교육을 한치도 등한시하지 않고, 뛰어난 학자들을 초빙하여 교수진을 구성하는 등 대학의 학문적 기풍을 만든 학자의 초상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한 사립대학교의 차원을 넘어 철학계 일반과 인문학계 일각에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정석해 류의 논리적, 실존적 연구방법론이 스며있는 것은 독립운동가, 민주운동가와는 또 달리 철학자로서 서산 선생이 보여준 면모일 것이다.

시대와 불화한 한 철학자의 감동적 생애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현혹시킨다는 이유로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 했고,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견해 때문에 유대인 사회로부터 파문당해야 했다. 이처럼 많은 철학자들이 시대와 불화하는 사상가들이었다. 이 책 『철학자 정석해』에서는 시대적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기를 극력 거절했던 한 겸손한 철학자, 진리에의 추구와 현실에 대한 행동 두 가지를 몸소 실천한 큰 스승의 초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는 이 책이 독자에게 선사해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덧붙여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는 2005년부터 서산 정석해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서산 철학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 사회에 부재했던 개방적인 학술강연 문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강좌로 2016년 130회째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는 ‘서산기념사업회’와 함께 올해 〈서산 신진 철학연구자상〉을 제정,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보인 젊은 철학연구자를 선정하여 상금과 함께 시상하고 있다. 2016년 수상자는 유재민(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 교육전담교수)이 선정되어 6월 2일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것[3․1운동]은 지도자 없는 우리 독립운동이요. 지도자가 없었어요. 글쎄, 그 후에 퍼진 말로는 독립운동이 김성수 씨의 저 중앙학교 교무실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합니다만, 거기 내가 반대했고. 그 말도 사실이긴 하외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살신성인할 사람이 없었어요. 남강 선생이 정주에서 올라오고 평양서 온 이들도 있었지만 33인 중 어느 한 사람 탑골공원에 온 이가 없었어요. (…) 민중을 동원해야 군중사변을 만들어야 일이 될 게 아닙니까? 청년 정재용 씨가 불을 질렀으니까 일이 터진 게죠. (…) 나는 그래, 그 학교 등사판을 몰래 가져다가 집에서 독립선언서, 삐라 등을 인쇄해서 거리에 마구 뿌렸어요. 사실상 죄다 내 손에서 나간 거죠. (…) 남대문의 학생 만세운동은 그렇게 벌어졌어요.” (79~80쪽)

“이때부터 선생과 이상은, 이종우 세 사람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4․19 학생의거의 뜻 깊은 결말을 짓고자 하는 모의를 계속해 나갔다. 그들은 주로 종로의 ‘백궁’ 다방에서 만났는데, 22일 다시 모일 때는 계동에 있던 선생의 아우 정석원 씨 댁으로 옮겨갔다. (…) 그날 이들 세 사람은 사태를 이대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칫하다가는 이 박사와 그 추종자들이 시간을 벌어 재규합하여 국민과 학생들에게 더 포악한 방식으로 보복을 할는지도 모른다는 것, 따라서 교수들이 궐기해야 한다는 것 등에 의견을 모으고 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4월 25일의 거사가 이(李) 정권에 대하여 4․19 학생의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정도로 끝나서는 분명히 실효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었다. 뭔가 충격을 안겨주는 행동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선생은 처음부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교수단의 데모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279~281쪽)

“세속의 잣대로 볼 때 선생을 두고 실패의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갖춘 높은 식견과 이 사회에 대한 성실한 봉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없지 않다. 선생은 평생 철학 가운데서도 논리학과 인식론, 그리고 형이상학과 같은 순수철학 분야의 문제에 몰두했는데, 이러한 철학적 관심과 그의 실천적인 사회 참여와의 관계 문제라든가, 또는 각 분야 상호간의 연계 문제 등에 해답을 주지 못하였다는 지적도 받는다. (…) 그러나 선생이 학문에서나 실천에서나 그토록 집요하게 관심을 두었던 것이 객관적인 과학 정신의 추구요 공정성의 획득이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선생이야말로 그의 실천적・학문적 활동의 중심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를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본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22쪽)

목차
새 판에 붙이는 저자의 말
초판 저자 후기
1장 철학자의 생애
2장 소년과 그의 시대
1. 철산군 정씨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다
2. 관서문화 소묘
3. 선천 신성학교 시절
3장 3·1운동 한가운데서
1. 연희?전문학교 학생이 되다
2. 3·1 독립운동의 숨은 주모자
3. 망명기의 활동
4장 유럽 유학과 연구 시절
1. 프랑스의 고학생
2. 독일에서 길을 찾다
3. 다시 파리로
4. 20년 만의 귀국
5장 일제와 칩거 시절
1. 귀향 그리고 실의의 나날들
2. 아내를 만나다
3. 해방에서 연희 동산까지
6장 학문과 교육의 길
1. 고달픈 행정보직 교수
2. 6·25 전쟁과 인공 치하 90일
3. 서울 수복, 그리고 피난살이
4. 피난지의 연희대학교
5. 환도와 학교 재건
6. 미국 시찰
7. 보직과 교단 사이에서
8. 평교수로 돌아와서
7장 4·19 혁명과 사회참여
1. 4·19 혁명의 발발
2. “내가 겪은 교수단 데모”
3. 4·25 교수데모의 전말과 의의
4. 학원 민주화운동
8장 만년의 학문과 삶
1. 5·16 군사쿠데타
2. 정년퇴임
3. 특별강사 정석해
4. 숙명학원의 돌풍을 잡고
5. 고려대에서 명예 학위를 받다
6. 정치 비판 활동
7. 혈압으로 쓰러지다
8. 태평양을 넘나들며 - 말년의 삶
9장 회고와 일화로 본 서산의 생활과 철학
1. 해학과 멋
2. 교수로서의 자세
3. 탁월한 문장가
4. 학문과 실천의 문제
5. 사상과 생활신조
서산 정석해 연보
부록: 선생과의 서신 교류